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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사랑받는 게 두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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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사랑받는 게 두려운 사람들

2021.09.04 06:00
가혹한 양육자를 둔 사람은 이후에도 그들의 기준을 자기 안에 내면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가혹한 양육자를 둔 사람은 이후에도 그들의 기준을 자기 안에 내면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안타깝지만 모든 아이들이 사랑받고 크는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따듯한 시선을 얻기 위해 매 순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아이들이 있다. 예컨대 보수적인 집안에서 딸로 태어나 사랑보다 차별에 먼저 익숙해지고 그럼에도 양육자의 칭찬 한 마디가 고파서 '좋은 성적' 같이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데 집착하게 된 경우, 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양육자의 감정 상태나 양육자가 자신에게 원하는 바를 면밀히 파악해서 착한 아이가 되는 데 집착하게 된 경우(나이에 비해 성숙하다거나 일찍 철이 들었다는 말을 듣는 아이들), 그러다가 거꾸로 자신이 받아야 할 돌봄을 부모에게 제공하며 양육자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경우가 그런 사례다. 


이렇게 무관심과 방치, 또는 사랑과 안전을 볼모로 양육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끔 협박하거나 수치심을 일으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정서적 학대를 겪은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더 우울하거나 불안, 섭식장애, 높은 스트레스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들이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그렇다는 연구들도 있다. 


여기에는 학대 자체도 문제지만 학대적이고 가혹한 양육 방식이 '스스로에게 학대적이고 가혹한 자아'를 만들어내는 탓도 크다. 즉 가혹한 양육자로부터 들었던 가혹한 비난들, 양육자가 나를 평가하고 깎아내렸던 방식은 양육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어느새 자신에 대한 비난, 평가, 깎아내리기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로 계속 남곤 한다. 고문하는 사람이 없이도 스스로를 고문하는 사람이 탄생하는 것이다.

 

전부 당신 탓일 리가 없다


사랑과 돌봄을 받는 것도 그것을 잘 하는 사람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능력 또는 스킬인 측면이 있다. 어릴 때부터 적절한 돌봄을 받고 자란 사람은 돌봄을 받는 데 익숙하고 또 본인도 자신을 향해 따듯한 태도를 취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칭찬이나 보상을 기쁘게 받는데 익숙하고, 결과가 어떻든 열심히 노력한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거나 특별히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등 자기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실패를 했을 때에는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 더 잘 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토닥일줄도 안다. 


반면 돌봄을 별로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커서도 자신을 돌봄을 받는 쪽으로 위치시키는 걸 어색해한다. 양육자가 자신을 다룰 때 그러했던 것처럼 본인도 스스로를 토닥이기보다 채찍질하는 편이라는 연구들이 있다. 예컨대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의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자책을 한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내가 모든 것을 망칠만한 영향력 또한 없는 게 맞을 것이다. 또 대체로 성공 확률은 작고 실패 확률이 더 큰 법이어서 서로 다른 100가지 일을 전부 잘 해낼 확률은 매우 작은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일이 엎어졌다고 해도 타이밍의 문제라든가 인간관계 문제 등 보통 그 원인은 다양해서 세상 일 중 100% 나의 책임이라고 할만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나쁜 일이 다 자기 탓이라고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책을 한다.


학대적인 양육자를 경험한 사람들 역시 이런 식으로 자책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양육자의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이 한 몫 한다. 아이에게 어른은 지나치게 큰 존재다. 아이는 양육자도 인간이어서 불완전하거나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부모님은 옳으며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학대의 경우에도 원인과 잘못은 백퍼센트 양육자에게 있지만 흔히 “너가 잘못했으니까 때리지” 같은 말처럼 그 원인을 아이에게 돌리는 경우가 흔해서 이런 비난을 내면화 하는 아이가 많다. 결국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뭔가 잘못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이 기본값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모님이 이혼한 것도 가정의 경제 사정이 나빠진 것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리가 있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부 당신 탓일리가 없다. 

 

실망시키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되자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양육자의 까다로운 요구를 전부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함을 빨리 깨달을 필요가 있다. 부모님도 한낱 인간일뿐이어서 실망시켜도 괜찮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비슷하게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지나치게 엄하거나 가혹한 양육자를 겪은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쉽게 말해서 작은 성취로는 도무지 만족시킬 수 없는 까다로운 양육자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높고 불가능한 기준에 부합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바친다. 하지만 결과는 거의 항상 실패이다. 애초에 모두가 완벽주의적인 양육자의 기준에 맞춰 항상 1등만 하고 서울대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은 항상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 촘촘한 평가의 그물에 단 한번도 걸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예컨대 나의 경우 외국에서 잘만 살고 있다가 한국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너 피부가 그게 뭐냐, 머리 좀 해야겠다, 옷은 또 어쩌고, 학위는, 집은, 아이는 언제 등등 갖은 평가를 받으며 순식간에 문제 투성이인 인간으로 변해버린다. 

 

분명 나 자신과 내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평가적인 시선들은 그런 만족을 용납하지 않고 내게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해 불만족하기를 강요한다. 이런 식으로 평가적인 양육자를 둔 사람들은 이후에도 그들의 기준을 자기 안에 내면화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채찍질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해가지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겠냐고 사랑받을 수 있겠냐고 1등도 못해서 어디다 써먹냐고 이 정도로 만족하지 말라고 작은 성취로 기뻐하고 행복해하지 말라며 자신이 들어온 가혹한 말들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사람이 된다. 결국 무엇을 해내도 반드시 흠을 찾아내고 좀처럼 행복해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양육자의 까다로운 요구를 전부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함을 빨리 깨닫고 '실망시키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본인도 어디까지나 ‘인간’이어서 많은 한계점과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실수도 저지르고 크고 작은 잘못도 저지르게 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자. 비인간적인 요구에 맞춰 인간이 아닌 무엇이 되려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노력을 멈춰보자. 부모님도 한낱 인간일뿐이어서 실망시켜도 괜찮다. 어차피 인생은 어느 정도 실망을 포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부모님(또는 내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인생의 진리를 가급적 빨리 깨우치기를 바랄 수 밖에. 

 

사랑받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다행스러운 점은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같은 시간과 공간이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가혹한 평가로부터 떨어지거나 또는 자신을 돌보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자신을 향해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매 순간 나의 가치를 증명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자기 자신을 따듯하게 대하는 것 자체에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더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을 생존방식으로 삼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토닥인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약한 존재' 되어버릴 것 같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강인한 척 살아온 것이 무기였기 때문에 유일한 무기를 빼앗기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던 일에 대해 본인은 그런거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라고 자기 암시를 걸며 합리화해온 경우도 많아서 실은 자신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정체성이 혼란이 오기도 한다. 이제라도 셀프케어 또는 자기 돌봄을 실천하려면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장은 가장 상처받지 않는 선택지일 수도 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자신을 향한 사랑과 돌봄을 거부하다보면 사랑과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도 계속해서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가혹한 세상을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된다. 마치 새장 문이 활짝 열렸는데도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새처럼 어차피 나가도 별 거 없을 거라며 파란 하늘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발을 내딪지 않으면 영원히 가혹한 양육자와 가혹한 내 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새장에 갇힌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문이 열렸다면 이를 밀고 나오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완벽주의와 자책이 심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등 스스로에게 가혹한 자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혹시 본인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사랑받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문헌
-Gilbert, P., McEwan, K., Matos, M., & Rivis, A. (2011). Fears of compassion: Development of three self‐report measures. Psychology and Psychotherapy: Theory, Research and Practice, 84, 239-255.
-Messman-Moore, T. L., & Bhuptani, P. H. (2020). Self-compassion and Fear of Self-compassion: Mechanisms Underlying the Link between Child Maltreatment Severity and Psychological Distress in College Women. Mindfulness, 1-1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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