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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다시 돌아온 교육과정 개정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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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다시 돌아온 교육과정 개정의 계절

2021.08.18 17:46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대선 후보들에게 소프트웨어(SW)와 인공지능(AI) 교육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류가 AI와 공존하게 되는 20년 후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현재 전체 수업 시수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보 교육을 서둘러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대학 입시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함께 과학기술한림원·공학한림원·의학한림원이 모두 발 벗고 나섰다. 이공계 출신의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 이광형 KAIST 총장,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 앞장을 서고 있다. 과학기술계 전체가 SW와 AI 교육 강화를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 교육 강화는 시대적 요구

 

21세기가 정보화 시대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제는 많이 시들해졌지만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상황에서 SW와 AI로 상징되는 ‘정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정보’ 교육이 몹시 부실한 것도 사실이다. 내용이 부실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정보 교육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 교육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인지, 아니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의 개발 역량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인지가 애매하다.


정보에 투입되는 시수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 동안 고작 51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정보는 ‘실과’의 한 부분으로 3~4주에 한 시간 정도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고등학교에서도 ‘정보’는 ‘생활 교양’ 교과 영역의 ‘기술·가정’ 교과군으로 분류되는 선택 과목이다. 학생들이 수능에도 포함되지 않는 ‘정보’를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우리와는 사정이 전혀 다른 나라도 있다. 영국의 초·중·고등학교는 ‘정보’를 필수 교과로 무려 374시간이나 가르친다. 인도도 256시간을 교육하고, 중국도 212시간이나 가르친다고 한다. 일본은 프로그래밍 등의 정보 활용 수업까지 합쳐서 무려 405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정보 교육 강화를 위한 과학기술계의 요구는 단순하다. 초등학교부터 정보를 독립 교과로 편성하고, 고등학교에서는 필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등 교육에 미치는 대학입시의 영향을 고려해서 정보를 수능의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대학의 입시 요강을 통해 정보 교과 이수를 의무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노력보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정보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시도가 과연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변화가 불가능한 국가 교육과정

 

 

현재 초·중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육과정은 2015년 개정된 것이다. 국정 교과서로 운영되는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육과정도 놀라울 정도로 경직되어 있다. 초등학교 5896시간과 중학교 3366시간의 수업시간이 과목별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배정되어 있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국가 교육과정의 개정은 절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의 심각한 이해관계가 풀린 실타래처럼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교사·학생·학부모는 물론이고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교사 양성 학과의 생존이 걸린 일이다. 교과서와 학습교재를 발간하는 출판사와 사교육 시장의 이해관계도 만만치 않다. 주5일제와 52시간 노동이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과정의 파이를 키울 수도 없다. 결국 교육과정의 개정은 아무도 핵결책을 찾아낼 수 없는 가장 난해한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2009년 개정에서 선언했던 ‘수시 개정’의 원칙도 무시하고 밀어붙였던 ‘2015 개정’의 작업은 군사작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단위의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대단했다. 학교에서의 부실한 한국사 교육 때문에 학생들이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다는 어설픈 설문 조사가 그 시작이다. 사실 ‘북쪽에서 부는 바람’을 ‘북풍’이라고 알고 있는 학생들이 ‘북침’도 ‘북쪽에서의 침략’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것도 모자라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을 내걸어야만 했다. 결국 한국사 필수화는 정부가 학생들의 상식을 폄하하고, 이공계 학술단체를 들러리로 세운 후에야 어렵사리 밀어붙일 수 있었던 지난한 과제였다.


현재의 국가 교육과정은 더 이상의 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존 교과목의 이름을 바꾸기도 어렵고, 특정 교과의 시수를 늘이거나 줄이는 일마저도 간단치 않다. 교육과정에서의 시수 배분은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교사 양성학과의 이해관계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 교육과정에 새로운 교과를 독립시켜 필수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실현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는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정보’를 독립시켜 시수를 늘이고, 수능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과학기술계의 요구는 고도로 경직된 현재의 국가 교육과정의 현실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보 교육 강화의 시대적 당위를 거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보 교육 강화를 위해서 자신들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교사 양성 학과를 찾아내기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교과의 등장이 대학입시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에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과학기술계의 주장도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국가 교육과정의 한계를 극복해야

 

교육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정부가 임기 말을 앞두고 느닷없이 ‘교육과정 개편’에 착수했다. 그런데 정부가 아무리 서둘러도 내년 10월에나 ‘총론’을 고시할 수 있고, 교과별 ‘각론’을 마련하는 데만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결국 이번 교육과정 개편은 정부가 지난 4년 동안 서랍에 넣어두었던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목표를 바꾸거나 작업을 중단하기가 어려운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국민이 선출하는 차기 정부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국가 교육과정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교과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현실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국가 교육과정은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제도로 전락해버렸다. 정보 교육도 중요하지만, 과학 교육도 중요하고, 국어 교육도 무시할 수 없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교과목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 국가가 교육의 목표와 틀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자율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쥐겠다는 시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정부가 직접 제작하는 시대착오적인 국정 교과서 제도도 과감한 수정이 필요하다.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교육을 더 이상 관료주의와 이념에 꼼짝없이 잡혀버린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과학기술계도 사회적 변화에 눈을 떠야 한다. 교육 알박기의 문제를 외면하고 맹목적으로 대선 예비 후보에게 매달리는 자세는 볼썽사나운 것이다. 극도로 빈약해진 ‘과학’ 교육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왜곡된 ‘수학’ 교육의 문제는 외면하고 느닷없이 ‘정보’ 교육만 강조하는 모습도 어색하다. 오히려 과학·수학·정보가 국어·사회 교육과 함께 융합되고, 어우러지는 교육과정을 요구하는 것이 과학기술계가 해야할 일이다.

 

교육부 제공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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