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코로나 시대'의 보통과학자 그리고 과학지식인

통합검색

[김우재의 보통과학자]'코로나 시대'의 보통과학자 그리고 과학지식인

2021.06.03 14:00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이라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한국 사회는 과학과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교훈을 배우는 중이다. 이제 백신 수급과 백신 접종 속도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아가는 중이고, 이대로만 가면 길고 긴 1년 반의 긴 터널을 지나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우리 상식과 예측을 벗어난 사태가 또다시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현대 문명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국가 간의 경쟁은 물론 우리를 찾아오는 위협의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지난 20년간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들,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로부터 광우병, 천안함, 세월호, 조류 인플루엔자, 메르스(MERS), 그리고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런 과학 지식이 필요한 사회적 위기 속에서 과학과 사회를 중재하고 연결할 과학지식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과학지식인은 누구인가

 

과학지식인은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았거나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과학지식인은 대부분 평범한 과학자로 경력을 시작했고, 과학자로 살다 죽는 보통과학자의 일부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그들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만 근대과학이 시작된 서구사회에서 과학지식인을 찾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근대과학의 시초로 흔히 언급되는 아이작 뉴턴은 자신을 자연철학자로 부르며 물리학보다 신학에 더욱 탐닉했던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뉴턴은 자신의 철학적이고 정치적 견해를 저술을 통해 자유롭게 펼쳤고, 그의 학문은 대부분 개인적 호기심에서 발원했지만 사회적 필요에 닿아 있었다. 그건 뉴턴과 동시대를 살았던 존 로크 같은 철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존 로크는 사회계약론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은 뉴턴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당대에 유행하던 과학을 실제로 수행했던 과학자이기도 했다. 과학자의 시작은 자연철학자였으며 그들은 아주 당연하게 지식인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18세기 뉴턴과 로크의 사상을 프랑스에 수입했던 볼테르와 당시의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이야말로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세계관을 통해 사회적 진보를 이루려던 지식인들이었다. 돌바크와 디드로 같은 백과사전파의 학자들은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전투적 무신론과 왕정에 대한 반대를 주장했고, 볼테르 또한 뉴턴주의를 바탕으로 왕정에 반대하는 논리를 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이야말로 훗날 프랑스대혁명의 철학적 기반이 됐고, 그 기저에는 근대과학의 과학적 방법론과 과학자사회의 규범들, 과학적 세계관이 녹아 있었다.

 

19세기의 다윈과 20세기의 아인슈타인의 일생을 살펴보아도 우리는 그들의 과학적 발견이 언제나 사회와 연결되어 하나의 사상을 형성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과학자는 원래 지식인으로 시작했고 과학적 방법론과 과학적 세계관은 과학자들이 지식인으로 사회 속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돕는 철학적 기반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20세기 중반 과학자사회가 대학이라는 상아탑에 안주하면서 사회와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점이다. 21세기의 과학지식인은 과학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일군의 과학기술자들이어야 한다.

 

우리에겐 없는 전통

 

2020년 신종 코로나 TF 기자회견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답변을 하는 뒤로 앤서니 파우치 소장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2020년 신종 코로나 TF 기자회견 당시 트럼프 대통령 뒤에서 앤서니 파우치 소장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과학지식인의 전통을 서구사회에서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가깝게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과학적인 코로나19 대처에 대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국민에게 과학적 진실을 말했던 앤소니 파우치 미국립감염병연구소장을 들 수 있다. 파우치 소장은 과학지식인의 존재에 익숙하면서도 이를 잊고 살았던 미국 시민들에게 과학자의 존재가 왜 사회를 상식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지 각인시켰다. 

 

파우치 소장 같은 과학자의 존재는 어느 순간 갑자기 미국사회에 등장한게 아니다. 미국의 과학자사회는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르원틴, 존 벡위드도 현장의 과학자이면서 ‘민중을 위한 과학’을 통해 과학을 엘리트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며 과학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려던 미국의 진보적 과학지식인 운동의 흐름이 자리잡아 왔다.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모두 받았던 라이너스 폴링과 같은 과학자처럼 현장과학자이면서도 반전과 반핵운동에 나섰던 용기 있는 과학자들의 전통 속에서 과학지식인의 지위를 유지시켜왔던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에선 당시 정치적인 혼란기를 겪으며 전후세대로 자라난 과학자들이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이끌었다. 존 데스먼드 버널을 중심으로 조셉 니덤, JBS 홀데인, 랜슬롯 호그벤, 하이먼 레비 등의 과학자들은 과학사가 게리 워스키가 ‘보이는 대학’이라 부른 네트워크를 통해 과학과 영국사회의 진보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학지식인이었다.

 

과학번역가 김명진이 ‘과학 좌파’라 부른 이 영국의 과학지식인들은 자신이 경력을 시작했던 과학 현장의 지식을 기반으로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위한 사상을 도출해낸 사상가이기도 했다. 훗날 버널과 니덤 그리고 홀데인 등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를 했다는 이유로 영국사회에서 크게 탄압받았고 니덤은 중국으로 건너가 과학자의 삶을 포기하고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엄청난 과학사 저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과학지식인의 존재를 이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건 이 두 사회가 과학자를 단순히 사회의 부속품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과학기술을 통해 사회가 발전했다는 확신을 공유하는 곳에선 과학기술자의 목소리에 당연히 힘이 실린다. 서구사회에서 과학자 자신의 전공분야는 물론 과학기술정책과 정치적 아젠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반핵운동 선언을 한 건, 당시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자리잡은 배경이, 산업화를 통한 도구적 경로였다는 점이다. 이런 도구적 관점 속에서 과학기술인은 그저 경제발전의 부속품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이익을 제공받기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는 과학지식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과학기술자들이 사회를 향해 발언할 때 이들을 격려해야 한다.

 

코로나19 속에서 피어난 한국의 과학지식인들

 

외교부 제공
외교부 제공

위기는 역설적으로 발전을 가속화시키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개발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 드물던 과학지식인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 또한 위기가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역할로 작용한 것일 수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나서야 조선에 의병이 등장했던 것처럼 과학지식인들도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한국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원칙과 제도를 통한 발전에 서툰 한국사회에서 이런 현상이야말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쳐야 했던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과학지식인의 모습이 사회에 알려지고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방송이나 강연을 통해 알려진 유명한 대중과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학현장에서 치열하게 연구하던 평범한 과학자들이다.

 

국제백신연구소의 송만기 과학사무차장은 코로나19사태를 통해 한국과 전세계의 백신개발 및 임상시험 상황, 각 백신별 데이터들을 언론에 알리는 역할을 이미 1년 넘게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그나마 백신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한국언론에서 조금은 축소될 수 있었을 것이다.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상무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매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바이러스의 전파와 확진자 수, 바이러스 유전체의 변이에 대한 소식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은 이제 국내 기자들이 반드시 아침마다 들리는 장소가 되었고, 바로 그 활동을 통해 김태형 상무는 바이러스에 대한 음모론과 왜곡된 뉴스들과 싸우고 있다. 미국에서 바이러스 연구를 하는 문성실 박사는 자신의 전공인 바이러스 연구를 기반으로 외국의 코로나19 관련 뉴스들을 한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출판된 책 《사이언스 고즈 온》을 통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삶을 사는 과학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엄청난 업적을 세운 영웅 말고요, 저 같은 사람이요."

 

하지만 문성실은 보통과학자일지언정 평범한 과학자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속에서 언제나 사회를 염두에 두며 이를 통해 과학지식인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에 모인 8명의 백신 전문가들·김인중 박사 페이스북
‘클럽하우스’에 모인 8명의 백신 전문가들·김인중 박사 페이스북

코로나19가 질병인만큼 과학기술인보다 의학자들의 발언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의사단체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젊고 진보적인 의학자들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코로나19의 진실을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들이지만 정치적 이념에 편승하지 않고 오직 과학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 또한 과학지식인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전문가와의 대화’를 이끌고 있는 김인중 박사, 예방의학 전문의 정재훈 교수, 보건경제학자 김현철 교수, 국제보건 전문가 이훈상 교수, 감염내과 전문의 엄중식 교수,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에서 언론의 가짜뉴스와 싸우며 현장의 치열함을 전하고 있는 이재갑 교수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사회는 코로나19라는 위기를 통해 과학기술계와 의학계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과학지식인들을 소환했다. 코로나19 자체는 비극이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게된 이들 과학지식인의 존재는 이후 한국의 미래에 큰 빛이 될 것이다. 

 

과학지식인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 다룬 책 《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에서 해리 콜린스와 로버트 에반스는 과학지식인을 부엉이들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이 단어로 콜린스와 로버트는 민주주의 사회가 그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학과 사회라는 어쩌면 상반되어 보이는 두 지점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부엉이 같은 목을 지닌 과학지식인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에는 더 많은 부엉이들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개념은 곧 출간예정인 김우재 《과학의 자리》에 담겨 있다.

-(**)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존 벡위드의 책 《과학기술과 사회운동의 사이에서》를 참고할 것.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5 + 6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